fjrigjwwe9r0UNIMO_MULTIBOARD:Brd_Contents ‘아이폰’ 홈 단추를 길게 눌러 애플의 지능형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를 깨웠습니다. 스마트폰 속에 있는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더니 금세 노래를 찾아 틀어줍니다. 아이폰 화면에 나타난 글자를 그대로 읽어주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계음이 이 정도면 들어줄 만합니다. 또박또박하고 정확한 목소리죠. 애플이 지난 2012년 시리를 발표할 당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시리는 스마트폰 속 ‘훌륭한 비서’다.”
시리의 목소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것일까요?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애플 시리에는 미국 음성인식 기술 전문업체 뉘앙스커뮤니케이션에서 개발한 엔진이 들어가 있습니다. 뉘앙스커뮤니케이션코리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알아봤습니다.
“우리의 말에는 음성의 원소인 ‘음소’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음소는 자음과 모음이죠. 자음과 모음으로 분절된 음소를 합성해 단어와 문장을 만드는 기술이 쓰입니다.”
뉘앙스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사람의 목소리를 집적 녹음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음소는 쉽게 말해 언어의 기본이 되는 소리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가’라는 말을 발음했을 때 ‘ㄱ’과 ‘ㅏ’가 음소입니다. 이 음소와 음소를 연결하는 기술이 단어를 만들고, 또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음소 대신 글자를 녹음해 말을 만드는 기술이 쓰였다고 합니다. ‘가’와 ‘나’를 따로 녹음하는 것이죠. ‘가’ 목소리가 필요할 때는 미리 녹음한 ‘가’를 틀어주고, 다른 글자가 필요할 때는 그에 맞는 글자를 들려주는 식이었죠. 이 기술의 문제는 편하게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기계적이고 불편하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이 같은 불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은행의 ARS 서비스를 이용할 때가 대표적입니다. “비밀번호를 눌러주세요”라는 말은 무척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고객님께서 입력하신 비밀번호는 1, 2, 3, 4입니다” 할 때 ’1, 2, 3, 4′ 부분이 무척 부자연스럽게 들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비밀번호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미리 녹음한 숫자 목소리를 그대로 틀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자는 “음소 단위로 녹음을 할 때는 성우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은 다음, 컴퓨터 음성 편집 도구를 활용해 음소 단위로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글자의 앞뒤를 고려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말의 음소는 총 28개라고 합니다. 초성과 중성, 종성을 더해 만들 수 있는 소리(28×28×28)는 2만1952개 입니다. 여기에 끝소리를 올리거나 내리도록 옥타브를 조절하는 과정이 추가됩니다. 우리말 특유의 두음법칙 등도 적용하면 비로소 녹음한 원고에는 없는 단어를 조합할 수 있게 됩니다.
목소리를 음소 단위로 나눠 녹음한다고 해서 모든 글자가 조합으로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자주 쓰이는 단어나 글자는 음소를 합치는 과정이 필요 없도록 한 번에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에서 “좌회전하세요”와 같은 목소리는 음소 단위의 결합이 아닌 한 문장입니다. “종로 3가입니다”와 같이 특정 지역 이름을 말하는 경우가 음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목소립니다.
자, 그렇다면 시리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일까요.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사람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리에 우리말을 녹음한 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뉘앙스커뮤니케이션 코리아 관계자는 “뉘앙스는 여러 업체가 합병하고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업체”라며 “시리의 우리말 목소리가 녹음된 것은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 본사에서 우리말 목소리를 입힐 사람을 섭외해 녹음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만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뉘앙스의 역사는 199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뉘앙스는 원래 스탠포드연구소(SRI)에서 연구 중이던 기술을 상용화해 등장한 업체죠. 뉘앙스는 기업 전화상담실의 고객 응대를 목적으로 기술을 상용화했습니다. 지난 2000년 뉘앙스는 음성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기술을 가진 스피치프론트라는 업체를 인수합니다. 스피치프론트가 가진 기술을 흡수한 뉘앙스는 이후 스캔소프트라는 업체와 합병합니다.
뉘앙스와 스캔소프트이 합병해 오늘날 뉘앙스커뮤니케이션이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녹음됐습니다. 스캔소프트나 스피치프론트도 모두 독자적인 목소리 정보를 갖고 있던 업체였으니까요. 뉘앙스의 음성 엔진을 쓰는 시리에 누구의 목소리가 쓰였는지 알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죠.
이 관계자는 “아마 유명인이나 전문 성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말을 녹음한 이는 찾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시리 영어 목소리를 녹음한 사람은 밝혀졌습니다. 미국 CNN이 찾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애플은 CNN의 보도에 “답변할 수 없다”라고 잡아떼기는 했지만요.
CNN은 시리 음성을 녹음한 주인공을 찾기 위해 적잖은 공을 들였습니다. 바로 ‘성문’을 분석하는 기술을 쓴 것이죠. 성문은 목소리가 가진 지문을 뜻합니다. 사람마다 목소리 톤이나 억양이 다르다는 것을 이용해 어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찾는 기술입니다.
성문 분석은 일반적으로 범죄수사에 많이 쓰이는 기술입니다. CNN이 미국 목소리 범죄과학 전문가에 시리 성문 분석을 의뢰한 결과 미국 애틀랜타에 사는 수잔 베네트라는 여성이 시리 목소리를 녹음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미국 목소리 범죄수사 전문가는 시리와 수잔 베네트의 목소리가 100% 일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CNN 보도를 보면, 수잔 베네트는 시리에 쓰인 음성이 자신의 목소리인지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지난 2005년 스튜디오에서 각종 문장을 읽어 목소리를 녹음한 일은 있지만, 시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쓰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는 것이죠. 지금 시리의 우리말 목소리를 녹음한 주인공도 자신의 목소리가 시리에 쓰였다는 것을 모른 채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말 시리에 쓰인 목소리도 성문 분석 기술을 통해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요? 국내에서는 숭실대학교 배명진 교수가 권위자입니다.
배명진 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 교수는 “시리 목소리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가 아닐 경우 전문 성우가 아닌 일반인일 수도 있다”라며 “성문 분석을 한다고 해도 데이터베이스(DB)에 목소리가 없으면 누구인지 찾을 수 없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목소리 DB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있습니다. 주로 범죄자의 목소리나 유명인, 잘 알려진 성우의 목소리가 DB로 등록돼 있습니다. 만약 시리 목소리 주인공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DB에 없다면, 주인공을 찾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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